2011/02/15 10:48
가끔, 아니 최근들어 더욱더
참으로 연구자감이 아니구나 싶다.
이건 어떤 비교와 타인의 시선에 대한 과민반응, 자괴감 등등과 분명 관련이 있다.
그러다가 이런 감정이 극에 찰 때면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물듯,
악을 악을 쓰고 싶어진다.
사회적 이슈, 뉴스를 타는 그런 거창하고 복잡한 소식들,
사실은 우울하고 막막하고
어떤 면에서 기가차고 웃겨서 대꾸도 못하겠는 그런 소식들.
연구자들이 그런 '사회적'인 소식들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게 여겨진다.
이를 잘 알고, 상황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큰 것을 볼 줄 알며,
현재가 얼마나 긴박한 상황인지...
각자의 주제와 필드 안에서 사고한다.
그런데 난 가끔 숨이 턱 막힌다.
생각만큼 나는 그런 거창한 소식들에 도통 흥미를 못느낀다.
어떤 국회의원이 개소리를 하면 또 그러려니...
뭐가 날치기 되면 물론 분노하지만 역시 또 이모양이군...
고유명사 암기도 할 줄 몰라서 극과 극의 성향을 가진 국회의원 이름을 동일인으로
착각하는 경우는 다반사.
그런 본심은 주변 사람들 앞에서는 너무도 챙피한 일이라
말도 꺼내보지 못한다.
차라리 내 흥미를 끄는 것?
우리 집 앞 슈퍼의 이번주 할인 품목과 세일 시간. ㅡㅡ:;
아동복을 저렴하게 파는 시기와 홈페이지 리스트. .
확실히 암기되는 것? 혹은 잊을래야 잊혀지지 않는 것들은?
시부모님 생신과 시누이, 시동생 생일.
어제 아이가 응가를 한 횟수와 모양....
누가 보면 웃어버릴 우리가계의 적금 총액....
휴~~~~
물론 시사 이슈보다 이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역시 살아가는게 중요하지 .... 라고 말해줄 사람은 많다.
솔직히 그 수준에서 투덜대는 것만은 아니다.
'진심'이라는 유치한 말이 그나마 통할까.
나의 연구자로서의 흥미나 진행 자체는 애초에 너무나 삶에 밀착되어 있어서
흔히 그것은 살아가는 영역이지, 연구의 영역은 아니지 않는가라고 반문될 만한 것들이다.
이쯤에서 또 착각하고
역시 아는만큼 실천한다는 식의 논리를 적용해 주지도 말길 바란다.
그러니까 옛 페미니스트들이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라는 식의 말도 아니다.
뭐랄까, 그런 말들의 거창함과 결국에는 전체, 혹은 사회 이런 커다란 것으로 나아가지도 않는...
다소 구차하고 칙칙하고 찐덕거리고 우울하기도 하고 짜증나지만
종국에 진짜 행복하고 기쁘고 웃음이 나는 것들이기도 한...
뭔가를 변화시키기 위해 내 삶의 작은 실천을 가져오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그니까 나는 묵묵히, 야곰야곰, 질겅질겅, 그냥 깨알같이
울면서 웃으면서 또 울면서 살아가는건데..
그것 자체만이 나의 관심사로 남아있다.
어떤 순간,
특히 내가 연구자라는 타이틀을 얻고자 하는 이상
이런 나의 '소심한' 관심사는 굉장히 못나 보인다.
그럼 그냥 집에서 살림이나 하는게 낫겠다 싶은 맘도 수백만번 드는 식이다.
그리고 도통 어디서 소통되기도 힘들다.
가끔은 나의 처지에서 연구가 진척되지 않는 것에 대한 합리화 같기도 하다.
솔로인 그래서 시간적, 물질적 여유가 있는 친구들과
그들의 결기(?)에 찬 사회적 관심들 옆에서 내가 한없이 초라하고
세속적으로 보이는 순간
그나마 내가 꺼내는 소심한 무기 같은것이랄까.
근데 또 이것 말고 뭐가 있냔말이냐라고 되묻고 싶을때가 있는거다.
그리고 정말 이 깨알같은 삶을 누군가 연구의 언어로 풀어내면 정말 안되는 건가.
이 칙칙한 마음. 이 복잡한 곤궁과 그런데도 아이의 웃음처럼
작지만 그것이 전부인 행복인 이 삶을.
그건 그냥 살아가는거지... 살아가는 영역이지..
그러면서도 과연 그것은 단시 살기만 하면 되는 영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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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2 11:03
불과 얼마 전에만 해도 윤홍이가 '뱃 속에 있었을 때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기만 해도
신기하고 좋았다.
그것만으로 감탄이었는데...
지난 주 쯤인가?
선배 한 명이 아이들이 5세가 되기 전까지는 태내에서 있던 일을 기억할 수 있다는 이론이 있다고 알려줬다.
그래서 선배아이에게 실험을 해봤단다.
'00야 엄마 뱃속 기억나?'라고 물었더니...
정말이지 깜찍한 얼굴로, 어떻게 알았냐는 듯이~~
'그럼!'하더란다.
선배 말로는 아이들이 사기칠 때 눈빛이 있고
진짜 일때 눈빛이 있는데...
이건 정말 진퉁이라고.~~~
그래서
'어땠어?'라고 물었더니..
아이가 글쎄,
'엄청 따뜻했어, 막 부드럽고, 무지 좋았어.' 하면서
혼자 굉장히 행복한 표정을 짓더란다.
그리고 더불어 '좀 어두웠어' & '아빠가 빨리 오랬어'라고도 했다니~~
헐!
신기하고 감격먹어서 나에게 와서 홍이에게도 실험해 보라고 한다.
얼마 전에 뱃속 이야기 해달라고 한창 하더니... 역시 기억하나 싶더라.
그래서 바로 저녁에 물어봤다.
잠자리 들려고 누워서
기분좋아 뵈길래
'엄마 뱃속에 있을때 생각나?'
...
...
답이 없다.
손가락만 빨고 관심이 없다.
어, 이거 아닌데.
'기억안나?'
...
...
내가 계속 보고 있으니까
답은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치그치.. 너도 기억났던 거지?싶어
바로 '어땠어?'하고 물으니..
빨던 손가락을 '뽁'하고 빼더니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톡!톡!
그리고
'자!'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귀찮다는 듯이.
잠이나 자라고 ㅜㅜ
몇 달 전에만 해도 뱃 속 이야기 해달라고
이야기 해주면 엄청 초롱초롱한 눈이 되었는데
너 왜 이렇게 되었니. ㅜㅠ
태내기억이 정말 있는지 없는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윤홍이가 뱃속 이야기에 한창 심취했을 때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선배도 딸이 진짜 기억하는지 그냥 어른들의 반응에 적당히 응대하는 건지 확신은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때의 아이 눈빛에는 '어떤 진짜'가 있음을 직감하고 있다.
선배 딸은 홍이보다도 어리다.
이론대로라면 그래서 더 기억이 날수도 있고, 윤홍이는 이미 잊었을 지도. ㅡㅡ:;
선배 딸은 일찍부터 말을 했다.
그래서 표현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홍이는 한창 뱃속 이야기에 빠져있을 때, 그리고 지금도 그 선배 딸보다 말이 느리다.
언어화 할 수 없는지도.
그런데 선배 딸이 '따뜻했어'라고 말할 때와
홍이가 뱃속 이야기 해달라고 할 때
아이들의 눈빛에 뭔지는 모르지만
뭔가가 있다.
우리가 말로 풀어내지 못했던 것들.
뭘까.
어떤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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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태내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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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8 15:25
"의미작용의 상징적 양식은 기호계가 활성화된다는 점 때문에 의미를 갖는다. 말하는 존재가 육체적 에너지를 가져다가 언어로 바꾸지 않는다면, 언어는 설령 의미가 있다고 하더라도 아주 조금밖에는 없을 것이다. "
<경계에 선 줄리아 크리스테바> 중에서
노엘 맥아피는 괜찮은 가이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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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테바에 빠져보고 싶다.
분명한 건 언어는 육체를 필요로하는 것 같다. 그리고 육체 또한 언어에 의해 새롭게 형성된다는 것.
그러므로 육체는 단지 권력작동의 장소만으로 볼 수 없다.
주체화와 필연적으로 관련하고
존재론적으로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공부를 너무 오래도록 안하고 있다.
뭔가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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